국제비상사태 선포하고도 "팬데믹은 아니다" 했던 WHO
테워드로스 사무총장 "모든 국가가 종합적 전략 취해야"
WHO는 팬데믹 6단계 기준 2009년 폐지 "규범적 정의는 없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통상 의미는 국가 간 전염이 일어나고 통제를 못 할 때
CNN "오늘부터 팬데믹이라 부른다"
코로나19가 사실상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공식 규정되는 형국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 상황임을 인정하는 발언을 내놓은 데 이어 미국 대표적 뉴스채널 CNN은 아예 WHO보다 먼저 팬데믹이라고 선언했다. 코로나19로 몸살을 앓는 각국도 팬데믹에 대응하는 수준의 대책을 내놨다.
9일(현지시간)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팬데믹 위협이 매우 현실화했다"고 경고했다. 그는 "주말동안 100개국에서 보고한 코로나19 사례가 10만건을 돌파했다"면서 "이제 코로나19가 많은 나라에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CNN은 이날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칭하겠다고 보도했다. CNN 수석 의학 담당기자 산자이 굽타는 "오늘부터 코로나 사태에 팬데믹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라면서 "가볍게 내린 결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며칠간 많은 공중 보건 책임자들, 역학학자들, 용어학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눴다"며 "일부는 당연히 보수적이었지만 다들 이제 우리가 팬데믹에 들어섰다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에 걱정없다고 장담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코로나19 파장에 대한 금융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근로소득세와 관련한 실질적인 구제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근로소득세 감면에 대해 윤곽을 밝힐 것이다. 감면 규모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큰 액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 증시가 폭락하고 코로나19 감염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사상 초유의 '전국 봉쇄령'을 내렸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에 따르면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9일 기자회견에서 "오는 10일부터 북부 지역에 한해 취했던 '레드존(봉쇄지역)' 조치를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나라 안에 따로 레드존을 설정하지 않겠다며 "이탈리아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다음달 3일까지 지속된다.
이번 조치에 따라 이탈리아 인구 6000만명의 이동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긴급한 건강 및 업무상의 이유가 아니라면 누구도 거주지역을 떠날 수 없다. 모든 국민은 이동이 필요할 경우 경찰, 혹은 군에 자신의 이동 계획을 밝혀야 한다. 조치를 어길 경우 벌금형, 혹은 금고형에 처한다. 대중이 모일 수 있는 모든 장소는 폐쇄됐다. 대학을 포함한 모든 학교는 문을 닫았다. 집회나 모임도 4월 3일까지 금지된다. 결혼식과 장례식도 열어서는 안 된다.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 경기도 중단된다. 오후 6시 이후에는 전국 모든 주점의 통행이 막힌다.
독일 정부는 이보다 먼저 코로나19가 팬데믹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4일 독일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은 독일 연방하원에서 "코로나19가 팬데믹이 됐다"면서 "상황이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분명한 것은 아직 정점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5일부터 확진 판정이 속출한 독일에서는 9일 확진자가 1000명을 돌파했다. 인접국 프랑스도 이날까지 1400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시베스 은디예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국가 전염병 경보 수준을 최고 단계인 3단계로 격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9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위협이 매우 현실화했다"고 경고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이제 코로나19가 많은 나라에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모든 국가는 코로나19를 통제하고 억제하기 위한 종합적인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까지 113개국 11만4000여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4000여명이 숨졌다.
브리핑에 배석한 마이클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은 코로나19의 팬데믹을 규정하는 정확한 기준은 없다고 했다. 다만 통상 팬데믹은 국가 간 전염이 일어나고 통제를 못 할 때를 일컫는다면서 "싱가포르나 중국 등 코로나19 통제에 성공한 나라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WHO의 관점은 100개국, 10만 명 같은 양이 아니라 방향성"이라고 덧붙였다.
WHO는 2009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신종플루(돼지 인플루엔자)를 팬데믹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증상이 예상만큼 심각하진 않았고, 타미플루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팬데믹 선언이 성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WHO는 당시까지 유지해 온 '팬데믹 6단계 기준'을 폐지했다.
태릭 얘서레비치 WHO 대변인도 지난달 25일 언론 브리핑에서 "WHO는 현재 팬데믹 6단계 기준을 현재 쓰고 있지 않으며 팬데믹에 대한 규범적 정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적으로는 팬데믹이 전세계적으로 사람 대 사람 간에 쉽게 퍼지는 새로운 병원균을 의미하는 데 쓰인다"고 덧붙였다.
과거의 WHO 팬데믹 기준을 보면 크게 '팬데믹 발전'. '팬데믹 경고', '팬데믹' 등 세 가지 큰 범주로 구분된다. 팬데믹 발전에는 ①변종 바이러스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동물로부터의 전염도 없음 ②변종은 아직 없으나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 발생 등 두 단계가 속한다.
팬데믹 경고는 크게 세 단계다. ③변종 바이러스 감염 발생 ④변종 감염에 인간 간 전염 추가 ⑤지역사회 감염 ⑥보다 넓은 지역에서 인간 간 전염 증가 등으로 올라간다. 마지막인 대유행(6단계)은 '대중들 사이에서 지속적 확산 증가'로 정의된다.
WHO는 지난 1월30일 코로나19 전염 상황을 '국제비상사태'라고 선포했다. 진원지인 중국 외 다른 지역에서 발병이 확산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팬데믹이냐를 놓고서는 '아니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한편 미국 CNN방송은 이날부터 코로나19 발병 상황을 팬데믹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CNN은 "오늘부터 현재의 코로나19 발병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팬데믹이란 용어를 쓰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며 "그게 두렵게 들린다는 걸 알지만 그게 패닉(공황)을 일으켜선 안 된다"고 보도했다.
CNN은 WHO나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모두 아직 코로나19 발병을 팬데믹이라 부르지 않았다면서도 "그러나 많은 전염병 학자들과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세계가 이미 팬데믹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강조했다.
CNN도 팬데믹의 구체적 요건이 규정돼 있지는 않다고 했다. △질환이나 사망을 유발할 수 있는 바이러스 △이 바이러스의 지속적인 사람 간 전염 △(이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확산의 증거 등이 팬데믹의 세 가지 일반적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CDC 산하 국립면역호흡기질환센터 낸시 메소니에 국장은 지난달 말 "코로나19가 질병과 사망을 유발하고 지속적인 사람 간 전파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우려스럽다"며 "이들 요소는 팬데믹의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한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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